쿠알라룸푸르에서 스즈키컵 결승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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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컵을 동남아시아의 월드컵이란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축구 수준이 동아시아나 중동에 비해 조금 떨어지기 때문에 월드컵을 나가기가 어렵고 이웃한 국가들끼리 국가 대항전으로 하다보니 2년을 주기로 열리는 대회지만 관심이나 위상은 꽤 높은것 같다. 몇년 전 방콕에서 머물때도 오전에 티비를 틀면 우리는 알수 없는 동남아시아 국가들끼리 경기를 치렀던 열기와 장면을 전달하는 뉴스를 볼 수 있었고 또 월드컵 예선과 일정이 겹칠땐 동남아 국가들끼리 경기에 우선순위를 두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난다.


시기가 좋아 마침 쿠알라룸푸르에 있을때 말레이시아와 박항서 감독님이 이끄는 베트남이 결승전에서 만나 경기를 치뤘다. 결승이야기에 앞서, 예선을 치르는 기간동안 내가 느낀건 여기 사람들은 생각보다 축구에 관심이 없는것 같다고 느꼈다. 경기가 있는날 응원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을 본다거나, 도심을 다닐때 축구 경기를 틀고 응원하는 분위기를 내가 있는 곳 주변에서는 전혀 느낄수가 없었다.


L에게 로컬 친구들 반응을 물어보니, 말레이가 전날 경기에 이겼는지 스즈키컵이 열렸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중국계 말레이 친구들이 많기 때문에 조금 이해는 가지만 생각보다 말레이시아 반응은 꽤 잠잠했던것 같다. 정작 직접 관련이 없는 우리가 생중계로 보고 포털 메인에 기사가 뜨는게 재밌기도 했다.


아무튼, 말레이는 결승까지 올라갔고 1차전을 베트남과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다고 하니 L과 경기장에는 안가도 펍에가서 사람들과 보자고 이야기를 하며 내심 기대했다. 베트남 열기는 어마어마하다고 하고 내심 약간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 사람들이 그래도 많이 모이고 술마시고 즐기는 창깟으로 갔다. 우리가 자주 가는 로꼬에 가니 주말 EPL 중계때보다 훨씬 더 적은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창깟 거리도 썰렁한 느낌이었다. 그러고보니 이 날 가장 번화가인 파빌리온에서도 서너시간 있었는데 유니폼을 입은 사람을 한사람도 본적이 없단 생각이 들었다.


매주 가는 펍인데 외국인들 조금과 중국계 말레이시아 사람 두명, 인도계 사람 세명정도만 축구를 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외국인인 우리만 더 들뜬것 같단 생각을 가졌다.


티비로는 중계를 틀어줬는데 다른 펍들을 보면 결승을 안틀어주는 펍도 중간중간 있었다. 경기가 시작이 되고 베트남이 먼저 두 골을 넣었을때 사람이 없어도 대놓고 좋아할수는 없었다. 얼마 없는 사람들이 골을 먹히자 안타까워 하는 탄식을 뱉었고, 괜히 나도 함께 아쉬워하는 시늉을 했다. 


전반을 보면서 아무래도 너무 흥이 안나고 분위기가 안살아 왜그럴까 생각을 해보니 우리가 있었던 창깟은 외국인 여행자가 많이 모이는 이태원 같은 곳이라 그런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현지인들이 많이 모이는 트렉(Trec)에 전반이 끝나자 마자 가야겠단 생각을 하고 L에게 이야기 했다. 예전에 트렉에 가면 외국인들보다는 중국계나 인도계 사람들이 엄청 모여서 술을 마시고 새벽 3~4시까지 계속 노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는데 현지 사람들은 그곳에서 축구를 볼거란 생각을 했다.


결국 전반이 끝나자마자, 트렉을 향했다. 창깟을 보니 여행자만 조금 있고 축구를 보는 분위기는 정말 하나도 나지 않았다. 


쿠알라룸푸르의 홍대같은 트렉에 도착해보니, 여기도 썰렁했다.

세상에나.. 창깟은 외국인들 거리라 그렇다 쳐도 현지사람들이 모여 노는 트렉에 사람이 거의 없다는게 꽤 이해가 안갔다. 아무리 평일 밤이어도 그렇지 결승이라는데...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국가다보니 말레이계 사람들이 주로 모인 국가대표팀을 나머니 다른 인종들이 싫어하는게 아니라 그냥 관심이 없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어렸을때 부터 단일민족 이야기도 하고, 하나이고 애국 이런부분을 많이 강조하는 분위기에 크고 살고 있다면 여러 종교와 인종이 다른 사람들끼리 모여사는 국가에 대한 애정이나 무게감은 우리보다는 확실히 낮은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나마 조금 사람이 모인 펍인데 LED에서는 축구를 틀어주지만 또 DJ가 음악을 틀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 속에 보이는 대부분이 중국계 말레이 사람들.


그래서 L과 나는 예전에 다트게임을 즐겼던 바에 가봤다. 주말 이른 저녁에 갔을때에도 사람이 꽤 많은 바였는데 결승이 있는 이 날은 덩그러니 우리만 있었다.


테라스에 중국계 사람들 두세명이 있었는데 축구는 아예 안보는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우리와 직원들만 축구를 봤다. 다트 머신만 열대가 넘고, 테라스와 반대쪽 내부에도 자리가 있을정도로 규모가 굉장히 큰 펍인데도 사람이 없었다. 정말 결승전이 맞나 싶을정도의 분위기..


결과는 2:2로 끝나고, 무언가 찝찝하게 밖으로 나왔다. 주말 밤 특히 새벽에는 이 거리를 그냥 빠져나가기 어려울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는데 참 썰렁했다. 우리는 평일에도 술을 밤새 마시고 또 출근하고 하는데 이쪽 사람들은 그런 문화는 아닌것 같다.


완전히 로컬들이 노는 장소는 아니지만, 부킷빈땅의 창깟보다 조금 더 로컬적이고 깔끔한 곳을 원한다면 트렉에 오는것도 추천하고 싶다. 단 주말에만!


바글바글 한 곳이었는데..


추억이 있는 공간. 사람이 너무 없으니 이상하다. 주말엔 테이블을 밖으로 다 끄집어내서 북적북적 했던 곳이다.


생각보다 너무나 분위기와 흥이 나지 않아 꽤 실망스러웠다.

다시 이야기 하지만 아무래도 다민족이 모여사는 국가다보니 이런 국가대표 팀에 대한 애착이나 관심이 덜한것 같다.

도심만 조금 돌아다녀보면 그런걸 느낄 수 있는게 각각 같은 민족끼리 주로 다니고 모이고 대화를 나누는걸 느낄 수 있다.

종교적인 이유도 있고 함께 즐길 수 없는 부분이 있고(음식, 술), 정책적으로도 말레이계 우대 정책을 펼치는 등

다른 민족들끼리 화합할 수 있는 분위기가 전혀 없고 서로 그냥 관심이 아예 없이 함께 사는 느낌이 쿠알라룸푸르에 조금 있다.


그래서 이런 부분들이 쿠알라룸푸르에 있으면 타인의 관심과 시선에서 자유롭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것 같다.

그 어떤 곳들보다 여기에 있으면 남에게 관심이 없다는걸 느끼게 된다.

근데 이게 사람들이 나쁘다는게 아니라 참 친절하다. 사람들은 친절한데 도심 분위기가 각각인 느낌?



아무튼, 결승 1차전이 지나고 L과 이야기를 해보고 왜 사람들이 축구를 안보는지 답을 알게되었다.

축구를 안보는게 아니라, 여기 인구의 대부분인 말레이 사람들은 종교적 이유로 술을 마시지 않기때문에

펍만 찾아다닌 우리는 잘못선택한 장소들을 찾아다닌 꼴이 되었다.


마막이라 불리는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차마시는 공간에 갔으면 사람들과 함께 응원하며 볼 수 있었다고 하며,

또 극장 몇몇 상영관에서 영화가 아닌 축구를 틀었다고 한다.


너무 외국인의 시선으로 축구를 보려 한것 같단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재밌는 경험을 했다 생각한다.


그리고 조금 더 재밌는 경험을 위해 경기가 열리는 하노이는 아니어도 호치민으로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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